<복수는 나의 것>은 개봉 당시 보다는 <올드보이> 이후에 재평가 받은 작품이다. 복수 삼부작의 시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영화는 새로운 연작 시리즈의 초기작품으로 등극하게 된다.
최근 복수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친절한 금자씨>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삼부작의 초기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은 <친절한
금자씨>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한 시각을 갖게 할 만 하다.
영화가 섬뜩한 순간이 있다. 지독하게 일상을 파고들어 그 공감대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그렇고 실화를 바탕으로 다룬 사건이 그렇다. 또 잔혹하게 인간의 폭력적인 심리를 끌어내 화면 자체에 대해 불편함을 만들 때가 그렇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이 불편함을 화면 가득 핏빛 항연과 함께 소리를 통해 표현한다. 주인공인 류(신하균)가 청각장애자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듣지 못하는 류(신하균)에게 소음은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
재철공장에서 얼마나 철이 갈리는지, 방망이로 사람머리를 칠 때 뒤에서 섬짓한 칼날이 있는지,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데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다. 2시간 내내 배경음악이 거의 없는(사건현장에서 동진(송강호)이 걸어가는 장면에 잠시 등장하는 미세한 음악을 제외하고) 것은 이같은 일상적인 소음을 극대화하고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전하려는 장치인 것이다.
음악이 없는 대신 철이 갈리는 소리나 시체 해부하는 소리, 살해당하고 살해하는 둔탁한 소리는 사실적이다 못해 끔찍하다. 소리에 대한 집착은 이를 듣지 못하는 류와 이미 듣고 있는 관객사이에 괴리감을 일으키게 만든다. 이 의도된 괴리감은 누가 심판자이고 복수하는 자인지, 그리고 그 복수가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함과도 같다.
영화를 이끄는 사건을 만든 류의 소통방식도 일방적이다. 귀에 들리는 것이 없으니 오직 눈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다. 영화는 복수라는 테마에 앞서 ‘소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통’의 단절은 돌이킬 수 없는 ‘복수’의 칼날로 이어지고 의도하지 않은 단죄 혹은 죽음에 사람들은 슬퍼하지만 그것이 죄책감으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아이가 죽었지만 그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귀머거리라는 스스로에 대한 한계일 뿐이다.
재미있는 점은 <올드보이>에서는 배경음악이 영화 상영시간 내내 흘러나온 다는 점이다. 마치 음악이라는 것이 영화를 어떻게 보이게 하느냐를 시험하듯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음악은 그 빈도수에서 극을 달린다. 감정을 지극히 절제하게 만들고 살인의 순간에 모든 감정을 폭발시켰던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 <올드보이>는 음악으로 감정을 설명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음악과 소리가 어떻게 쓰였는가를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부분이다.
건조한 시선<복수는 나의 것>은 무척이나 건조한 영화다. 말라버린 나뭇잎을 쥐어말면 흩뿌려 질 정도로 원형을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전환점을 거치면서 원형의 모습을 잃어버린다. 표정은 굳어있고 살인의 순간에도 주저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동진(송강호)은 죽은 딸을 부검하는 모습을 쳐다보며 오열하지만 타인을 부검하는 장면을 보면서 하품을 하며 지겨워한다. 중소기업 사장인 동진은 잔혹한 살해현장에서도 구역질 한 번 하지 않는다.
자살한 누나를 보고 슬퍼하는 류는 장기밀매단을 살해할 때에 잔혹함은 누나에 대한 복수 이상이다. 사람의 신장을 먹는 데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또 이 건조함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극히 절제되어 있는 카메라에도 묻어난다. 신장의 고통으로 뒹구는 누나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고 식탁에서 라면을 먹는 류와 그 옆집에서 소리를 벽 사이로 듣는 관음증에 네 명의 사내를 훑는 카메라는 지극히 건조하다.
마치 현대 도시인들이 폐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태를 반영하듯, 복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살인의 경중은 스스로가 정하고 결정한다. 상대방이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부차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정당성 이전에 내가 중요하다. 이를 지극히 건조하고 잔혹하게 그려내는 영화는 그래서 인간미에 대한 설정을 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단절시킨다.
역설의 미학영화는 곳곳에서 복합적이고 도저히 상황과 맞지 않는 장면을 종종 보인다. 신장거래를 위해 텅빈 건물로 오르는 계단을 액자구성을 통해 세 번이나 줌인(Zoom In)하는 것은 미술적 장면이라고 할 만큼 독특하다.
또 영화는 종종 상징을 차용하듯 곳곳에서 상반된 이미지를 심어놓기도 하고 정적인 틈새를 보이면서 웃어야 하는 부분인지 헛갈리게 한다. 해직된 직원은 중소기업사장인 동진 앞에서 칼로 배를 그어 놓고서는 순간 주춤거린다. 칼을 빼앗고 뺏기는 광경과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류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미묘한 코믹함이 묻어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미 유명해진 대사인 “너나 잘하세요” 나 “바빴어” 는 복수라는 심각한 상황을 비틀어버리는 미묘한 블랙코메디 상황을 제시한다.
‘한국최초 정통 하드보일드 무비’라는 부제에 걸맞게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에 대한 잔혹하고도 직접적인 행동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현대인들의 심리와 부적절하고도 건조한 시선을 담으며 갖가지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성향이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어떻게 투영될런지 궁금해진다.